경주마이야기

경주마이야기(47) :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경주로에서 생을 마감한 경주마 '빛의정상'

말이좋아 2018. 4. 2. 11:32

봄이 왔음에도 봄같지 않은 날씨.

관람대에서 바라다보이는 청계산은 시간이 지날 수록 부옇더니 8,9경주즈음에는 산의 윤곽이 실루엣으로 보일만큼 시야는 혼탁하다.

 

예전처럼 경마장을 찾는 것이 쉽지않고, 편치 않고 즐겁지 않은 시절이다.

물론 마사회의 무개념때문에 경마장을 찾는 것이 고달프다. 

수년 전부터 지금껏 마사회가 해온 정책은 나와 같은 가족단위 경마인구에게는 치명적이다.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고달프다. 더군다나 지갑속 돈을 다 털려가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꾸역꾸역 경마장을 찾아오는 이유가 뭔가?

 

내가 사는 곳 가까이 시설좋은 스크린 경마장이 있다. 예전에는 '마사랑'이라 불렀고, 지금은 렛츠런문화센터인가 뭔가?

모르겠다. 몇년전에 한번 가본게 마지막이다. 그곳은 입장료를 받지않았는데 이젠 입장료도 받는다.

그러나 난 저 먼 분당에서 과천까지 시간과 교통비 그리고 적지않은(?) 주차비를 부담하고 간다.

 

내가 그렇게 가는 이유는,

멀리있어 귀 기우리면 들리기도 하는 경주마의 거친 숨소리와 경주마를 다그치는 기수의 채근 그리고 채찍을 시도하는 기수들의 그 액션을

생동감이 있게 느끼기 위해서 간다.

 

결승선 앞두고 마지막 스퍼트를 시도하는 그 큰 말과 기수를 보노라면 저절로 느껴지는 흥분과 긴장감. 

그 스릴은 경주마와 기수 뿐만 아니라 보고 있는 관중도 마찬가지다. 경주로 가까이 붙어서서 느껴본 자만이 안다.

 

십년 전쯤 되었을까. 록버스터라는 회색의 경주마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천창기 기수가 탔던것으로 기억하는데

4코너를 돌아나오는 록버스터의 눈과 마주쳤다.

 

숨을 몰아쉬며 직선주로를 향하는 록버스터의 눈은 컸다. 그 핏발선 얼굴에 큰눈을 부라리며 질주하던 그 모습.

그런 모습이 내가슴에 있기에 경마장을 찾는 것이 내게는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그런 경마장을 찾는 나같은 사람은 마사회는 오지말라고 많은 짓들을 한다. 현명관이 주차장을 고액의 유료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셔틀버스 타고 오라더니...성남과 경마장을 오가는 성남셔틀의 불편한 배차시간의 문제를 마사회 고위간부에게 민원제기 했더니 개선하겠다더니 아예 셔틀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내가 아는 마사회는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이 욕을 하든 침가래를 뱉든 뭔 지랄을 하든지 말든지 개념치 않는다. 

그들이 어떻하던 찾는 이들이 돈을 최대한 많이 쓰고 가주길 바란다. 모든 시설과 서비스는 오로지 그들을 지향할 뿐이다.

건전레져랍시고 돈도 안쓰고 도시락 싸오고 찌질하게 놀다가는 인간들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마사회의 경영성과를 평가받기 위해서는 하루 수백만원씩 쓰고 가는 그들이 필요할 뿐이다.) *마사회에 불만이 많다보니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레 마사회를 욕하게 된다. 

 

썰이 길었다. 마사회의 천박한 경영에 불만이 있다보니 저절로 욕이 나오게 된다.

넓은 잔디밭, 벚꽃이 활짝 만개한 경마공원,소풍나온듯 즐기던 가족단위의 경마장 보습, 정문에서 오가던 마차, 아이들의 놀이터,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뽑아버리, 그 마사회장 씹새끼가 빨리 수갑차고 들어가서 그 안에서 뒤졌으면 좋겠다. 그 새끼 무리들도 같아.

하여간 마사회에 대대적인 적폐척결을 해야한다.모두 소탕해서 경마관람문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알았냐  이 세금도둑놈들아? 

 

참 열심히 경마장을 드나들다보니 왠만한 광경은 다 본듯했는데,

어제 10경주에서 가슴아픈 광경을 봤다.

 

빛의 정상이야기이다.

빛의 정상은 좋은 말이다.

GII 대상경주에서도 우승한 적이 있으며 수득상금이 10억이 넘는 경주마이기도 하며 출전했던 말들중에서 상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인 말 역시 빛의정상이다.

 

선행도 좋고, 추입도 좋은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경주상황에 맞게 전개 가능한 자유마이다.

이날은 선행을 시도하면서 선두권에 가담하였다.

어 오늘은 선두로 나가려고 하네 하며 지켜봤다. 선행마가 2두가 더 있는 상황에서 빛의정상은 그 중 출반속도가 뒤쳐진다.

2코너를 돌아나가고 3코너를 향하던 중 힘조절을 하나싶더니 걸음이 뒤처지기 시작한다.

4코너를 진입할 무렵, 빛의정상은 후미로 뒤쳐졌고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아보이더니, 급기야 4코너를 꼴지로 돌아나오고 속도는 현격이 줄어든다.

이후 직선주로에서 빠른 질주른 하지못하고 능력부진의 모습을 보이며 마무리를 하는 가 싶었고 이미 다른 경주마들은 결승점을 통과하며

순위가 확정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경주가 마무리되는 가 싶었다.

빛의정상에 타고 있고 안토니오기수가 타고 있었다.

 

이 경주는 1900m 경주였다. 최근 정말 보기 힘든 경주이다.1900m, 2000m 경주는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집에 가려고 가져온 짐들을 챙기고 우리 가족은 관람대에 앉아 이경주을 보고 있었다. 이때 빛의정상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옆에 앉은 아들은 '기수가 말에서 내렸다'고 하고 내게 보라더니 말은 경주로에 쓰러져 있다.

 

'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빛의 정상은 드러누워있고, 안토니오기수는 그 옆에 서있고, 사람이 펜스안으로 들어 오고 있다.

말이 힘들어서 지쳐서 드러누웠나보다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기수는 차량에 탔고 관계자들이 말을 살려보고 있는 장면

 

 

가림막을 세우고 크레인같은 별다른 기구 없이 사람들이 빛의정상을 끌어당기며 실었다. (죽은면 개취급 당한다고 했던가)

 

 

오늘의경주 출마표에 기재되어 있는 빛의정상 정보 : 불과 3개월전 12월24일 경주에서 선행으로 질주하며 1위했다

 

 

'폐출혈인가?'하며 나름 해석하고 지켜보고 있고, 쌍안경으로 보기 딱 좋은 1900m경주임에도 가방에서 꺼내기 번거러워 넣어뒀던 쌍안경을 아들은 꺼내달라고 하고 나는 마지못해 꺼내준다. 

느낌에 아무래도 빛의정상은 죽은 듯하다. 

 

결승점을 불과 1미터? 2미터? 정도롤 앞두고 그렇게 쓰러지며 생을 마감했다.

무섭게 질주하며 달리다 심장에 무리를 느끼고 달리기를 멈추고 또 그렇게 걸었고 

승부욕을 불태우며 힘껏 말몰이 하던 기수는 힘겨워 하는 말에서 이상을 느끼고 또 승부는 고사하고 출전경주 하나를 무심하게 날려버리는 뜻밖의 불운에 허탈해 하며 힘없는 말을 타고서 힘없이 가던중 쓰러질 것 같은 말에서 기수는 내렸고 말은 이내 모래 경주로에 쓰러진 것이다.

 

빛의정상은 올해 7살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7살이면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다. 한국에 국제경기 원정경주오는 말들의 나이가 7,8세는 물론이고 11세도 있었음을 볼때 3,4,5,6세가 성숙기 전성기 완숙기라고 본다면 7세는 전성기는 지났지만 상대마에 따라서 언제든지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중장년의 원숙마가 되겠다. 성적이 좋은 경주마들이 7,8세까지는 현역으로 얼마든지 뛰었으니 나이가 많아서 죽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전성기가 지난 암말인 반면 질주습성이 아직 왕성한 경주마가 경주로에서 무리하게 페이스를 이끌고 가다보니 심장기능에 무리가 와서 숨을 거뒀을 것 같다.

마사회에 기록에는 폐사로만 나온다.

 

마주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가 빛의정상을 아껴고 사랑해온 마주인지, 돈벌이수단으로 영업해온 마주인지, 어떤 인격인지 나는 모른다.

어느 쪽이든 빛의정상의 경주로 사망소식은 충격적일 것 같다.

 

경마장에 있는 수 천마리의 경주마 중 한마리 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달에 한번 정도 몇 년을 봐오던 말이다.

때로는 나에게 몇 푼의 돈으로 수익을 주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가진 아까운 돈을 휴지로 만들어 놓기도 했던 말이어서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1.9km를 열심히 달려오다 순위는 꼴지지만 결승선을 바로 코앞에 두고 모래위에 드러눕더니 그 상태로 생을 마감한다는 그 상황이

비록 경주마이지만 마음이 짠하다.

 

빛의정상을 보며 마지막 한가지 안타까웠다면, 결승선은 넘고 죽었다면 좋았을텐데하는 허툰 바램이 있었다.

빛의정상은 마지막 경주에서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으므로 공식기록이 남지않았다.

주행중지로 끝났다.

 

마주는 빚의정상을 위하 기념비라도 하나 세워줘야 할 것같다.

그렇게 많은 상금을 벌어다 주고 달리다 경주로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마주로서 이보다 감동적인 장면이 어딨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