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이야기

박태종기수 조선일보 인터뷰

말이좋아 2007. 5. 22. 12:06

다음은 조선일보에 실린 박태종기수의 인터뷰내용전문이다.

아침 집으로 배달된 조선일보를 펼치던 중 전면으로 통으로 실린 박태종 기수의 기사를 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뭔가 달라진, 진일보한 느낌을 받았다.

 

신문에 통으로 전면 인터뷰가 실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매우 가치있거나 상징적인 내용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경마에 관해서 일체 다루지 않느다해야할 국내 가장 보수적인 언론인 조선일보에 그런 기수 인터뷰가 실린 것은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인터뷰기사를 보면 그의 성격이 참으로 잘 드러나 있기도 한 것 같다. 그의 성격은 단순하고 진솔하며 분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경마장에서 그에게 보낸 야유는 그를 미더워 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건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야속해서였다.

 

그는 늘 당당하다. 열심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자 멋있어 보인다. 그의 체구는 작아도 멋있다.

 

 

 

 

 

 

  

최보식 기자 congchi@chosun.com
입력 : 2007.05.18 23:29 / 수정 : 2007.05.20 15:1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18/2007051800907.html
[Why?] “馬七人三(마칠인삼)…말 채찍보다 칭찬 좋아해”

  • 기수(騎手) 박태종(43)은 경마 시합에서 통산 1300번을 우승했다. 국내에서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대기록이다. 그가 1299번 우승을 했을 때, 마사회는 이런 낭만적인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한국 경마의 살아있는 역사인 박 기수(騎手)에게도 한가지 고민이 있다. 박태종이라는 이름 석 자는 경마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경마를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축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차범근’ ‘박지성’ 정도는 알고 있고, 야구를 모른다고 해도 ‘박찬호’ ‘이승엽’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박 기수가 치열한 경쟁과 숱한 부상 위험 속에도 꾸준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산물이라 할 수 있는 1299승은 차범근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기록한 98골과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100승을 넘긴 기록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보도자료란 과장되기 일쑤지만, 여하튼 나도 경마를 모르는 일반인에 속하고, 박태종 이름석자는 낯설었다.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경기도 과천경마장에서 직접 만난 그의 외모도 낯설었다.

    건장한 체격에 야성적인 무엇을 찾고 있었는데, ‘말 등 위의 승부사’는 150cm와 46kg이 전부였다. 얌전하게 내 앞에 앉아있는 그에게 “승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쩔쩔맸다.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어려운 걸 생각하거나 신경 쓰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말을 탈 뿐이죠. 그게 직업이니까요.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이기면 더 기분 좋기 때문에 이기려고 하는 거죠.”

  • ▲경마시합에서 기수 박태종이 말과 함께 질주하고 있는 장면. /마사회 제공

  • ―경마에서 승부는 어떻게 갈립니까?

    “단거리가 1000m인데, 보통 1분 03초 정도 걸려요. 긴 거리는 2000m인데 2분 12초 정도지요. 때때로 말 코 차이로 승부가 갈리지요. 말 머리나 목 길이의 차이라면 금방 아는데, 코 차이는 정말 힘들죠. 이럴 경우 내가 이겼을 것 같은데 판정을 보면 질 때도 있고, 졌구나 싶은데 이길 때도 있고요. 사람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힘드니까 결승점에 카메라가 있지요.”

    ―말 위에 올라타면 이기고 지겠다는 감(感)이 옵니까?

    “처음부터 누가 이기고 누가 질 지는 모르죠. 말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지요. 말이 늘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출장(出場)할 때 ‘이 말은 느낌이 좋다,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감은 조금 있어요. 물론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올 때도 많아요.”

    ―느낌이 좋은 말은 어떤 말입니까?

    “말 고삐를 딱 잡고서 출장할 때, 힘있게 걷고 성격이 좀 쾌활하고 발걸음이 가벼운 말이 있어요. 그럴 때는 느낌이 좋죠.”

    ―말도 쾌활할 때가 있나요?

    “사람과 다를 게 없죠. 사람도 지치면 힘이 없고 쓰러지잖아요. 경기에서 뛰기 싫어하는 말들이 있죠. 억지로 끌려가면 힘이 없고 그렇지요. 반대로 나는 천천히 가고 싶은데도 말이 오히려 더 빨리 가려고 하고, 발걸음에 힘이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면 느낌이 좋죠.”

    ―뛰기 싫어하는 말을 어떻게 뛰게 만들죠?

    “농땡이 끼가 있는 말들, 땡땡이 치는 말들, 능글능글한 말들이 있잖아요. 그런 말들은 거칠게 다루면서 능력을 끌어내죠. 참 설명하기 어려운데, 안 때리고 예쁘게 계속 다루면 말을 안 듣는 말들이 있거든요. 그럴 경우 채찍으로 기합을 줘가면서 과격하게 말을 다루는 거죠. 얼마 전까지 동물학대라고 해서 채찍질을 연속 3번 이상 못하게 했어요.”

    ―채찍질을 하면 잘 나갑니까?

    “대부분 잘 뛰는데, 오히려 채찍질 하면 반항하는 말들이 있어요. 꼬리 쳐들고 옆길로 새고, 마치 ‘너는 때려라 나는 그대로 간다’는 식이지요. 그런 말들은 채찍질을 하나 마나죠. 칭찬과 채찍을 잘 배분할 줄 알아야지요. 말의 목을 잡고 쓰다듬어 주고. 말도 자기의 능력을 알아주면 좋아하죠.”

    ―그러면 말은 자신의 등에 올라탄 기수를 알아봅니까?

    “글쎄요. 자기한테 위협을 주거나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좀 아는 거 같아요. 그런 사람이 자꾸 접근하면 말이 피하거나 양 발굽을 쳐들고 덤비죠. 말을 타려면 무엇보다 말과의 호흡이 중요하죠. 말은 살아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 위에 올라탄 기수와 호흡이 맞아야 잘 뛰죠. 그걸 우리는 ‘인마일체(人馬一體)’라고 하죠.”

    ―1987년부터 말을 탔지요. 이제는 말을 척 보면 잘 뛰는 말이다 못 뛰는 말이다 알겠군요.

    “글쎄, 대충 조금은 알겠는데, 딱 봐가지고 저 놈은 뛸 만하겠구나 하는 경지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어요. 다만 말을 많이 탔으니까 다루는 기술은 더 나아졌죠.”

  • ▲/사진=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 ―말이 귀엽습니까?

    경주마는 약 450~500kg이다. 그의 체중보다 5배나 무겁다.

    “네. 귀엽죠. 그런데 사나운 말도 많아요. 뒷발로 차는 것은 물론이고 깨물기도 하지요. 어떤 말들은 가볍게 살짝 무는데 어떤 말들은 막 이렇게(손가락으로 팔뚝을 부여 잡는 시늉을 하며) 물어요. 코 잘리고 귀 잘려나간 사람들도 있었어요.”

    ―통상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성격 사나운 말들이 더 잘 뜁니까?

    “그렇지도 않아요. 그런데 암말보다는 수말이 조금 능력이 더 있어요. 함께 시합하면 보통 수말이 이길 확률이 더 많아요. 암말보다 수말이 힘이 더 있어서 그런 것인지.”

    ―실제 달리는 것은 말인데, 그 위에 올라탄 기수의 역할은 무엇이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뛰는 말이죠. ‘마칠인삼(馬七人三)’이라는 말이 있죠. 경마에서는 말 능력 70%, 기수 능력 30%라는 겁니다. 기수는 호흡을 맞춰주면서 말이 편안하게 최대한으로 뛸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끌어내어 주는 거죠. 뛰기 싫어하는 말도 더 뛰게 만들어야만 기수의 능력을 평가 받는 거죠.”

    ―말은 무한 속도로는 못 뛰지요?

    “사람이나 말이나 똑같잖아요. 사람한테 채찍질 한다고 해서 계속 더 잘 뛰겠어요? 한도가 있는 법이죠. 레이스를 할 때 말의 고삐를 잡고 앞으로 밀어주는데, 우리끼리 말로는 ‘빨래 민다’고 하죠. 말 등에서 엉덩이를 떼고 원숭이 자세로 밀어주기 때문에 힘이 엄청 들어가요. 기수는 하체와 어깨 힘이 좋아야 하지요. 비록 말에 올라타있지만 질주하는 말과 같이 뛰는 셈이죠. 그런 체력을 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빠뜨리면 안돼요.”

    ―20년 만에 1300승을 했으니, 경마가 있는 토·일요일마다 하루 몇 번씩 출전한 것이지요?

    “지금까지 전적이 약 8600전쯤 돼요.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7~8번 탔거든요. 하루에 8번 타서 5번을 우승한 게 제일 많이 한 거예요. 올해 들어 허리를 좀 다쳤거든요. 경주 중에 들어오다가 떨어졌지요. 허리 부상으로 요즘은 4~5번 출전합니다.”

    ―말이 자기 등 위에 올라탄 기수가 마음에 안 들면 떨어뜨립니까?

    “거의 그렇죠. 말이 요동을 치거나 갑자기 사행(斜行)을 해서 떨어지기도 하고, 경주 때 말끼리 발이 걸려서 같이 넘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부인을 만난 게 낙마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지요. 부인이 팬이었다면서요?

    “팬이 아니고, 병문안을 온 제 팬클럽 회원 중 한 분이 승마와 관련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분이 자기 직장의 여직원을 소개해주었죠. 와이프를 처음 봤을 때 첫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석 달만에 결혼하자고 그랬죠.”

    ―부인이 더 키가 크죠?

    “저보다는 크죠. 160cm 초반이니까.”

    ―처가 쪽에서 사위될 사람의 키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까?

    “저는 몰랐는데 장모님이 반대를 하셨다고 합니다. 제 키도 작지만 경마에서 부상을 많이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나 봐요. 그 때문에 반대가 심했다고 해요. 어떤 기수들은 1년에 석달 정도 병원에 살아요. 저도 지금까지 10번 이상은 입원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기수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들죠. 그런데 통증이 없어지고 조금씩 낫게 되면 ‘다시 나가서 말을 타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

    ―한번 당했으면 됐지, 왜 그런 생각이 듭니까?

    “저는 말이 좋아서 기수가 된 것이 아니고, 말을 잘 타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하기에 호기심이 생겨 한 거죠. 또 체격 조건도 맞았고요. 말을 타다 보니 말이 좋아졌던 것이지요. 처음부터 말이 좋았던 건 아니죠. 똑같이 말을 타더라도 승마는 대부분 취미고, 경마는 직업이지요. 매일 말 타는 것이 때로 지겹고 힘들죠. 힘들지만 직업이니까 하는 거지요. 진짜 타고 싶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그러나 일주일 정도 안타면 엉덩이가 근질근질 하죠. 내가 다른 데를 가도 이렇게 잘 할 수 있는 데가 없으니까.”

    ―승부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까?

    경마는 늘 이기고 지는 게 있잖아요. 부담이 많죠. 자면서도 종종 말들이 질주하는 꿈을 꿔요. 얼마 전에는 자동차들이 경주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제가 그 위에서 자동차를 채찍질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승부의 스트레스는 견디기 쉬워요. 설령 졌더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진 거니까요.

    오히려 시합 중 부상을 당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심하죠. 경주 중 내 말이 질주하는 레인으로 다른 말이 들어오려고 하면 섬뜩해요. 진로 방해를 받아 말과 함께 넘어지는 ‘인마전도(人馬顚倒)’가 되거든요. 그럴 경우 큰 부상을 당합니다.

    또 경마 시합날 비가 오면, 주로(走路)가 질척거리고 엉망이 되거든요. 말 발굽들에서 튀어 오른 흙덩이들이 얼굴을 덮쳐요. 레이스 중에 눈이 안 보이게 돼 사고가 많이 나죠. 겨울에 눈이 내려 바닥에 쌓이면 말들이 미끄러져 더 위험해요.”

    ―부인은 계속 하라고 합니까?

    “아내는 위험한 기수에서 은퇴하고 조교사(경주마 훈련책임자)를 할 수 있으면 하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조교사는 마주와 말 관리사들과 관계를 잘 해야 하고, 머리 쓰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또 기수처럼 상금 받는 것도 없고. 솔직히 기수생활은 몸만 안 다치면 할 만해요. 체력만 안 떨어지면 저는 계속 기수로 남고 싶어요.”

    ―사람들과 얽히는 것을 싫어합니까?

    “저는 단순한 것을 좋아해요. 사람들과 얽히는 것도 싫고. 성격이 내성적이라 그런지 몰라요.”

  • ▲국내 경마 최다승을 기록중인 박태종 기수가 마사회 소속 기수 명단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본인은 말처럼 막 뛰고 싶은 욕망이 없습니까?

“글쎄, 달리기는 잘했거든요. 중학교에 들어가니 육상선수를 뽑는데요. 테스트에서는 합격했는데, 육상선생님이 ‘너는 키가 작아 장래성이 없다’며 빼더라고요. 제가 달리기를 잘해서 그런지, ‘말이 더 빨리 달렸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타서 그런지 많이 우승을 한 것 같아요. 저는 무엇을 해도 지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이런 승부욕은 내 안의 내성적인 성격과는 조금 반대인 것 같아요.”

―경마팬들이 베팅을 해 돈을 날리면, 기수를 욕하고 비난하지 않습니까?

“그런 거야 기수 생활하면서 계속 있잖아요. 워낙 듣다 보니…. 물론 내게 돈을 걸었다 잃은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부정을 한 것도 아니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 못한 것도 아니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무슨 죄를 진 것 인양 죄책감은 안 들죠.”

―승부 조작의 유혹을 받아 본 적이 있죠?

“재작년까지만 해도 기수들은 시합을 앞둔 날부터 경마장 내 숙소에서 격리돼 지냈어요.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서지요. 전화도 못 걸게 하고 휴대폰도 맡겨야 했어요. 부정의 소지가 있을지 모른다고 외부 차단을 한 것인데, 정작 부정을 할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막는다고 못하겠어요.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돈봉투를 건네주며 자기와 한번 어떻게 해보자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또 집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해서는 ‘당신 때문에 돈을 엄청 잃었으니 본전을 찾게 해달라’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면 ‘나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괜히 시간 낭비 하지 말라’고 딱 잘라요. 그전부터 쭉 그렇게 해왔어요.”

―동료나 선후배 기수 중에서는 그런 부정에 연루됐던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거야 자신이 유혹에 버티지 못해 그런 거죠. 저는 기수에 합격을 하면서부터 ‘이게 나의 천직(天職)’이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았거든요. 그래서 누가 ‘부정을 하자’ ‘돈을 줄게 가르쳐 달라’고 해도, 기수가 천직이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는 전혀 동요하지 않지요.”

―왜 기수를 천직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보다시피 나는 키가 작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 가서 일 하려고 해도 이 체격으로 힘들잖아요. 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내가 딱 맞으니까. 내 길은 기수라고 머릿속에 인식시켜온 거죠. 만약 기수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면 저는 말 관리사라도 했겠죠.”

―처음에는 경주마도 몰랐을 테고, 기수라는 직업도 몰랐지 않습니까?

“충북 진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왔어요. 마포에 있는 이모부님 식품가게 일을 도왔고, 또 사당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포크레인 조수로도 일했거든요. 그러던 중 이모부께서 기수 모집 광고를 보신 거예요. 그래서 12기 기수후보생 모집 시험을 봤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오기가 생겨 그 다음에 다시 시험을 쳐 13기로 뽑혔어요.”

―학교 다닐 때 키가 작아서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까?

“키가 워낙 작으니까 귀엽게 생각했는지, 글쎄 별로 맞아본 기억은 없어요. 우리는 참 못 살았어요. 저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자전거로 통학했어요. 한번은 비 오는 날 버스를 타고 간 경우가 있었거든요. 만원 버스라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데 그게 안 잡혀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비가 와도 우산 쓰고 자전거로 통학했지요. 그 때는 비포장 도로였고 성인용 자전거밖에 없었어요. 다리가 짧아 페달이 잘 안 닿는데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어야 하니, 넘어지고 엎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 때가 제일 서럽고 힘들었죠. 형제가 셋인데 제가 제일 작죠. 어머니가 ‘먹을 게 없어서 너를 잘 못 먹여서 더 못 컸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이제 좀 많이 먹어야겠네요?

“지금 많이 먹는다고 키도 안 크고….”

나는 농으로 했는데, 사내는 진지하게 답변했다.

남들은 내가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모아 놓은 게 없어요. 기수의 연봉이 다른 프로스포츠보다는 훨씬 적거든요. 경주 1등 상금에서 기수 몫은 7%이지요. 1000m 경주에서 걸린 상금은 약 1000만원입니다. 우승하면 기수는 70만원을 받게 되는 거죠. 여기에 기승료(출전할 때 받는 돈)가 5만 원입니다. 이게 수입의 전부지요. 다른 프로선수들은 다쳐도 연봉이 있으니까 돈이 나오잖아요. 기수는 다치면 없어요. 그러니 부상이 제일 두려운 거죠.”

―이겼을 때와 졌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요?

“우승하면 상금을 번다는 느낌이 좋고, 마주(馬主)에게 1등을 해줬으니까 마주도 영예와 상금을 받으니까 좋고, 우리는 모두 상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꼴찌로 들어 와봐요. 돌아오는 것은 없고 헛수고만 하는 거죠.”

―기수는 체중 조절 때문에 음식을 많이 가려야 하죠?

“기수 몸무게가 49kg을 넘으면 곤란하지요. 달리는 말에 중량 부담을 주니까요. 통상 몸무게가 1kg이 늘어나면 승부에서는 마신(馬身: 말 몸체 길이) 차이가 납니다. 다른 기수들은 먹는 문제로 고민이 많지만, 저는 아무리 먹어도 체중이 안 불어요. 조금 덜 먹으면 체중이 빠지기 때문에 제때 밥을 먹어요. 오히려 체중이 빠질까봐 걱정해요.”

―술·담배는 합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막걸리를 한번 마셔봤거든요. 반 대접을 얻어 먹고 죽을 뻔 했지요. 성인이 돼서 술 마실 기회가 생겼는데 소주 한잔도 못 마시겠어요. 쓰고 독하고, 입만 대도 얼굴이 빨개지고 몸에 울긋불긋 두드러기가 나요. 담배도 그렇고. 저는 몸에 안 좋다는 음식 같은 것도 안 먹어요.”

―삶의 즐거움이 뭡니까?

“운동하는 것이 낙이죠. 시간 날 때 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하고 자전거를 타고, 그게 낙이죠. 독서 같은 것도 안 해요.”

그는 화요일에 쉬고, 시합이 없는 평일에는 말 훈련을 위해 새벽 4시 20분쯤 경마장에 출근한다. 새벽에 깨기 위해 밤 9시 이전에 잠든다고 했다. 내게는 그의 삶이 단조로워 보였을지 모르나, 그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퇴근은 몇 시에 합니까?

“지금(오전 10시쯤) 인터뷰 안 했으면 벌써 집에 갔죠.”

―집에 갔으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말 등 위의 승부사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와이프와 놀고 있겠죠.”

  • 16일 20년동안 1300여회 우승한 경마기수 박태종씨가 과천 경마장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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