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마

시애틀슬루(Seattle Slew)

말이좋아 2006. 8. 4. 11:26

시애틀슬루(SEATTLE SLEW)


 1967년 미국생, 수말, 부: BOLD REASONING, 모: MY CHARMER


 시애틀슬루는 1974년 부마 볼드리즈닝과 모마 마이챠머 사이에서 태어난 진한 밤색 말이다.

 값싼 망아지가 탁월한 경주마가 되는 경우는 퍽 드문 일이다. 그리고 그 경주마가 우수한 씨수말이 되는 경우는 더더욱 특별한 사건이다. 시애틀슬루는 바로 그러한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은 말이다. 시애틀 슬루의 망아지 시절 몸값이 신통치 않았던 데는 부마 볼드리즈닝이 당시까지만 해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었고 설상가상으로 어린 시절 시애틀슬루의 앞발이 90도 가까이 꺾었던 신체적 문제점 등이 복합적으로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는 염가로 거래된 망아지치고는 후에 경주마로서 뿐만 아니라 씨수말로서 분명 세계경마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명마가 되었다.

 이 점은 생산자 벤 캐슬맨에게는 불운이었지만 구매자 카렌 테일러에게는 진흙에 묻혀 있던 진주를 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횡재중의 횡재였다.

 그의 신체적 결점은 교정 편자로 훌륭하게 극복되었고 트레이너 빌리 터너에게 보내진 후로 그는 하루가 다르게 면모를 일신해 갔다.

 시애틀 슬루는 목장으로부터 조교를 마치고 돌아온지 한달 사이에 3개 경주에 출주하였고 여기에서 모두 우승하였다. 그는 그해 겨울을 플로리다에서 보냈고 3세가 되어 하이얼리의 1,400m 경주, 플라맹고 스테익스, 우드 메모리얼의 경주에서 잇달아 우승하면서 그의 진가를 높여나갔다.

 또한 삼관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캔터키 더비에서 런 더스티 런을 제압하고 패권을 거머쥐었다. 연이어 프리크니스 스테익스에서는 코모런트를 제치고 아이언 몬스티튜션의 뒤늦은 도전을 뿌리치며 1 1/2마신 차로 우승하였고 벨몬트 스테익스에서도 다시 한번 런 더스티 런을 재물 삼아 4마신 차의 손쉬운 승리를 낚아올렸다.

 그는 시크리테리엇 같은 힘과 풍모는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그의 선조들 중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3관마의 영예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해 시애틀 슬루는 원래 가을까지 쉴 계획이었다. 그러나 스왑스 스테익스에 참가만 하면 10만불의 추가 금액을 주겠다는 할리우드 경마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시애틀 슬루는 우승마 토빈에 16마신을 뒤지며 어이없게도 참패하고 만다. 그는 그 시즌에는 다시 출장하지 않았고 다만 후두염에 걸렸다는 소문만 무성하였다. 그의 소유주는 분통이 터졌다. 그 해가 가기 전, 조교사는 면허도 가지고 있지 않은 덕 피터슨이라는 젊은이로 교체되었다.

 시애틀 슬루는 병을 치료하고 스팬스리프트 목장으로 1,200만 달러의 가격으로 팔리는 거래가 있었던 11개월 동안 경기장 밖을 떠나 있었다.

 그 뒤 그는 오랜 공백기를 극복하고 5월 벨몬트 파크에서 열린 1,400m의 별정경주(Allowance Race)와 8월 사라토가의 경기에 참가하여 월등한 기량으로 우승을 거둔다.

 그러나 비중을 두었던 9월 5일 페터슨 핸디캡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 초반 선두를 지키며 쉽게 승리를 결정 짓는가 하더니 14파운드를 덜 짊어지고 출전한 패취즈에게 막판 덜미를 잡힌 때문이다. 시애틀 슬루에 기승하여 그 때까지의 전경주에 함께 참가 했던 진 크루겟 기수는 말의 조교 불량을 이유로 조교사 피터슨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조교사 역시 지지 않고 기수의 교체를 주장하며 거칠게 맞받아쳤다. 이 일이 있은 후 앤젤 코더로가 시애틀 슬루의 잔여 경주마 시기 동안 기승하게 되었다.

 시애틀 슬루는 3관 경주 우승마 간의 역사적 첫 대결 성격을 띠고 있었던 말보로컵에서 어펌드를 시종일관 앞서며 3마신 차의 여유있는 승리를 거두었다. 우드워드에서 그는 엑셀러를 4마신 차로 앞서며 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자키 클럽 골드컵에서는 막판 분전에도 불구하고 엑셀러에게 코차로 아슬아슬하게 역전패 하였지만, 이어 열린 스띄베상 핸디캡을 우승하면서 잃었던 자존심을 회복하였다. 그는 이 경주를 끝으로 경주마 생활을 마감하고 교배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첫 교배 시즌 시애틀슬루의 교배가격은 15만 달러였다. 그러나 자마들이 좋은 성적을 내자 이후 그의 교배 가격은 급등하였다. 1982년 자마 래들류스 덕택에 교배생활 1년차 말들중 수위를 차지하였고, 1983년에는 22만 5천 달러를 가격이 껑충 뛰어 올랐다. 슬루 오브 골드, 쥬버나일 스웨일 등 자마들의 계속된 호성적으로 1984년 그의 교배료는 75만 달러에 까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자마중 첫 유럽 진출마인 암자드가 별 성적을 거두지 못하여 대서양 저편에 있던 시애틀 슬루의 명성과 교배 인기도에 적지않은 상처를 입혔지만 시애틀 슬루의 체형이 유렵의 조건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상인들로 인해 급격한 가격 폭락은 가져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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