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알고주알

경마, 즐겨야 하는 이유(2-1)

말이좋아 2008. 6. 27. 14:46

지난 주 쓰다 중단된 글을 이어보자.

비록 허접한 글이긴 하더라도 'feel'받을 때 이것도 써야 잘 써지지 때가 지나면 김빠진 맥주 마냥 싱겁다.

 

# 경험 3#

 

물론 경마를 한다고 해서 매번 잃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여름이었던 것 같다.

휴가를 앞두고 있었는데 경마장도 혹서기 휴장을 앞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경마로 휴가비를 한번 벌어보자는 무모한 생각이 발동했고, 어떻게 하면 휴가비라는 많은 돈을 딸 수 있을까 골똘히 연구하여

경마장을 향했다. 연구한 끝에 얻은 결론은 베팅이다. 효율적인 베팅.

 

그날 비가 주절주절 많이도 내렸다. 주로는 질퍽했고 경마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진행된다는 말이 맞는 지 빗속의 기수가 측은할 정도였다.

난 천창기기수의 말과 김혜성기수의 말을 추려서 단승식, 복승식, 연식 등에 거금을 분산 베팅하는데, 어느 걸 맞추더라도 본전을 확보할 수 있게 금액을 조절했다. 소위 승부경주인 셈이다.

 

쉼호흡을 가다듬고 2층 관람대에서 경주를 지켜봤다.

인기 1위였던 오경환기수의 밸리스펙트가 4코너를 돌아 직선주로로 빠져나오는 모습을 경주로 대형모니터를 보고 있던 나는 순간,

'확 다리나 뿌러져 버려라'하며 속으로 내뱉았는데 그리고 1초나 지났을까 오경환 기수가 움켜진 손으로 말 어깨를 툭쳤고 말은 갑자기

경주로를 이탈하며 쓰러져 버렸다.

 

우승예상마 밸리스펙트는 결국 말 다리가 부러져 실격처리됐고 뜻밖에 내가 샀던 마권이 모두 적중되어 그토록 바랬던 '휴가비'를 챙기게 됐다. 아직도 그날 그 마법에 걸린 듯한 상황이 머리속에 남아 있다.

그날 그 경주에 지금은 亡者가 된 유훈기수가 탄 말도 샀던 것 같다. 그 이후 그 날과 같은 마음으로 경주에 임했지만(?) 그런 날은 다시 오지 않았다.

 

# 경험 4#

 

경주결과가 나오고 내가 산 마권중에 하나가 맞아서 본전이나 되나 하며 창구로 가서 마권을 내밀었는데, 구만원이 넘는 돈을 주는 게 아니가. '아니?'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창구 여직원은 기계에 표시된 대로 돈을 기계적으로 주는 것이니 잘못 준 것은 아니었다.

난 내가 산 마권이 백배에 가까운 고배당을 맞춘 적중마권인지도 몰랐다.

그날 기분은 길가다 십만원짜리 수표를 주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흐리멍텅하게 베팅을 하면 곤란해진다.

 

#경험 5#

 

끝으로 경주중에 정말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는 경주가 있게 마련인데, 단승식 배당이 1.5 밑을 맴돌고, 연승식 배당이 1.0내지는 1.1인 경우 배당뿐만 아니라 내가봐도 남이 봐도 들어올 것 같은, 다리만 안부러지면 들어온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거금을 털어 베팅.

그중 기억에 나는 두 사건이 있는데, 하나는 박태종기수가 탄 말이 출발하자마자, 아니 출발하지도 못하고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앞으로 고꾸라져 낙마한 사건이다. 그날 그 말에 걸린 엄청난 돈이 휴지조각이 됐고 이날 마사회 게시판에 나타나지 않는 박태종기수가 사과의 글을 올리기까지 했으니 그 파장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두번째 역시 박태종기수가 탄 말이다.

난 박태종기수와 시크릿웨폰이 항상 호흡을 맞춰 좋은 성적을 내 오던 걸 유심히 지켜보던 터였고 이날도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나에게 돈을 벌게(?)해주는 구나 하고 거금(?) 육천냥을 투자했고 말은 나는 듯이 결승점을 통과했는데,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웨이트패드가 빠져 심의란다. 박태종기수의 말은 실격처리가 됐고 그때까지만 해도 즐거웠던, 우리는 구겨진 표정으로 기분 잡쳤고 재수없는 하루가 되버렸다.

 

경마는 즐겁다.

난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오락중 하나가 경마라고 생각한다.

이 즐거운 오락을 평생하고자 한다면, 난 이 오락을 즐길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적은 금액을 베팅하는 이유다.

 

난 매주 뭉치돈을 가지고 와서 경마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뒤따라가 뭐하고 살길래 저런 돈이 있는지를 보고 싶어진다.

오백원씩, 천원씩 베팅을 해도 하루 놀다보면 3만원이 훌쩍 날아간다. 매주 이런 식이 반복되는 셈이니 일년에 150만원을 경마에 쓰는 셈이다.

물론 딸 때도 있지만, 못 따는 경우가 더 많으니 이것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점 백원짜리 고스톱 치듯이 해야 즐겁고 재미있는 오락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경마가 훨씬 재미있고 편하게 느껴진다.

 

이번 주말에는 모두가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삼아 경마장을 찾기를 바란다.